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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록메탈 신의 전설, 역사가 되다
『Beyond Record: 1985-1995 인천 록메탈 연대기
(고경표‧김학선 지음, 복숭아꽃 펴냄, 2023)
김성환
음악저널리스트이기에 앞서 인천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왔던 한 명의 시민으로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동인천 지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팝 음악을 좋아했기에 개인적으로는 이 지역은 그야말로 ‘음악의 천국’과도 같았다. 당시 동인천 지하상가부터 대동학생백화점까지 다수의 레코드점이 있었고, 지금도 인천 토박이 4050 세대 음악 매니아에게는 추억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심지 음악감상실’을 시작으로 90년대 초반까지 해외의 최신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음악감상실들이 수많은 학생과 청춘남녀를 맞이했다. 또한 동인천역부터 배다리까지의 대로는 해외, 국내 록 밴드들의 음악을 듣고 뮤지션을 꿈꾸는 청춘들을 끌어모으는 여러 음악학원과 악기점들이 존재했다.
그 결과 수많은 지역의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여 의기투합해 밴드를 결성했고, 음악감상실 공간과 지금의 클럽들의 원형이 된 작은 공연장을 통해 무대에 서고, 지역의 10대에게 환호받았다. (비록 인천여고는 이전했지만) 인일여고, 인성여고까지 3개 여학교가 동인천 지역에 있었기에 일부 여학생들은 야간자율학습을 빠지면서까지 밴드들이 연습하는 공간까지 찾아가 그들의 음악을 들으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인천 각 구에서 록 음악에 빠진 남학생들도 로컬 록 밴드의 공연을 보며 졸업 이후 직접 그 세계에 뛰어드는 일도 있었다. 결국 이 시기의 인천의 청춘들에게 ‘록 음악’은 단순히 일부의 관심을 넘어 하나의 유행이자 청춘의 낭만으로 자리했고, 어떤 이들에겐 결국 그들의 인생을 던진 ‘업(業)’이 되기도 했다.
서평에 왜 개인적 기억을 소환했는가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글을 통해 소개하는 [Beyond Record: 1985-1995 인천 록메탈 연대기]는 바로 이 시기가 포함된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인천의 대중음악 신, 특히 록과 헤비메탈을 연주했던 밴드와 그들이 활동했던 당시 인천의 지역적, 문화적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부평 문화재단에서 발행했던 [20세기 인천 부평 대중음악](2017)의 집필에 참여했기에 청소년기와 20대의 기억이기도 한 이 시기의 이야기에 대해 몇 년 전부터 취재와 자료 조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마침 그 시기에 이 책의 저자 고경표는 이 책의 제목인 ‘비욘드 레코드’의 첫 번째 전시를 신포동에서 하고 있었기에 그가 이 주제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품고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전시회 관람을 통해 그 이후의 저술을 위한 취재의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점에 대해 늦었지만,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후 그는 신포동 인천여관에서 열려 인천과 다른 지역 로컬 신의 역사까지 소개했던 [비욘드 레코드-로칼리카](2017), 인천음악창작소에서 열렸으며 한국의 대중음악 발전의 토양이 되었다 평가받는 1950~70년대 부평 미군부대 애스컴(ASCOM) 시대의 역사까지 포괄한 [비욘드 레코드-시티 오브 헤드뱅어](2022)까지 더 많은 관계자의 인터뷰, 음반과 관련 자료 수집을 통해 확장된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이번에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과 함께 그간의 전시 내용에서 공개된 인터뷰 내용과 관련 사진 등을 문서 형태의 기록으로 정리하고, 동시에 책 속의 두 번째 파트인 ‘인천 록메탈 연대기’ 등을 통해 더 일목요연하게 인천 지역의 로컬 록 신의 흐름을 정리한 내용을 담아냈다. 김학선 역시 그간 한국의 하드 록-헤비메탈 뮤지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영역에 대한 역사적 사료 수집을 해오고 있었기에, 이 책에 통사적, 음악적 전문 지식을 보완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당시 인천의 로컬 록 음악 신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그리고 인천의 록 문화의 형성에 기여하고 관련해왔던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이 가감 없이 다수 실려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기록하는 과업에서 (비록 기억의 불확실성이란 변수가 있더라도)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만큼 신뢰성을 가질 수 있는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부평 애스컴부터 신포동의 외국인 클럽까지 인천의 다수 공간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뮤지션 이경천의 증언부터 인천 헤비메탈의 1세대에 속하는 제3세대의 꿈, 아웃사이더스를 거친 보컬리스트 양범석의 인터뷰, 동인천에 이어 1990년대에 관교동을 중심으로 밴드들의 연습 공간이 밀집되는 과정에서 나름의 이바지했던 고참 대중음악평론가 성우진(현재 경인방송 FM [한밤의 음악 여행] 진행자)의 인터뷰, 현재 인천음악창작소장이자 1990년대 인천이 낳은 대표적 헤비메탈 밴드 사하라의 멤버 우정주의 인터뷰 등에서 당시 인천 록메탈 신이 어떻게 형성되고 융성하다가 소멸해 갔는가에 대한 자세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 책이 가진 장점은 한국의 지역 음악 신 연구에 있어서 분명히 좋은 근거가 될 좋은 자료들이 한눈에 보기 쉽게 잘 정리된 도표들, 이미지들로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 과거 전시회에서 공개된 적이 있었지만 1980~2000년대까지의 인천의 로컬 록 밴드들의 명단이나 103일 연속 릴레이 라이브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동인천의 ‘대명 라이브 파크’의 당시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들, 당대 활동한 록메탈 밴드들의 실제 공연 사진들은 전시회를 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될 만큼 귀한 자료들이다. 특히 여러 당대 뮤지션의 기억을 모아 완성한 ‘관교동 밴드 연습실 기억지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활동하던 밴드까지 관교동으로 내려와 활동의 공간을 확보하며 인천 뮤지션과 교류한 관교동의 기록이 더 시각적으로 구체화한 것이라 흥미로웠다.
2010년대 이후 인천의 대중음악사에 대한 정리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발행된 [Beyond Record: 1985-1995 인천 록메탈 연대기]는 그 역사 속에서 가장 ‘로컬 음악 신 다운’ 모습을 선보였던 시기의 기록을 단지 구두의 전설이 아닌, 충실한 지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연구와 역사적 조명이 꾸준히 계속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성환 (金成煥, Kim Sung Hwan)
2000년 월간 음악매거진 GMV에 원고 기고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각종 음악 관련 매체 및 음반 해설지 작성 등의 활동을 해온 음악 저널리스트.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대중음악 매거진 [Paranoid] 부속 잡지 [Locomotion] 총괄에디터, 웹진 음악취향Y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