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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EM, 합창으로 ‘평화’를 노래하다

<IFEZ국제합창축제>

손주현

합창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 유대, 그리스 등지에서 유물이나 유적들을 통해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합창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음악 장르와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를 구성하고 있고, 클래식 합창뿐 아니라 팝, 재즈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다채로워졌다. 합창은 다양성과 조화의 미학을 담은 음악 형태로서 우리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합창의 중요성은 예부터 많은 학자들이 주장해 왔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합창이 인간 속에 있는 모든 좋은 것과 고상한 것을 강화시켜 주는 성스러운 일”이라 하였고, 르네상스시대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는 “젊은 사람들이 도덕적 가치관을 기르는 데 있어 합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또한 헝가리의 음악교육자 졸탄 코다이는 “합창을 통해서 얻는 성취감으로 훌륭한 인격이 준비된 사람을 만든다”고 하였다. 이렇듯 합창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인격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합창은 한 사람의 소리가 튀어도 안 되고, 나만을 고집해도 완성할 수가 없다. 그만큼 합창은 내가 아닌 우리, 즉 단합된 모습일 때만 나타날 수 있는 소리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24년 2월 24일(토) 아트센터 인천에서 주최하는 IFEZ국제합창축제는 주제가 ‘Pacem’, 라틴어로 ‘평화’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합창은 단순히 모여 노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소리라는 의미가 더 크다. 성별도, 모습도, 생각도 모두 다른 우리지만 충분히 하나 됨을 표현할 수 있고, 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평화를 노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동안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노래하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도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이젠 팬데믹도 끝나 온 인류가 평화로울 줄 알았으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다툼, 시기 등으로 화합이 아닌 분열로 치달아 가던 우리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제주에 이어 국제적인 문화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인천에서 국제합창축제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단일 연주회로 미시건주립대 합창단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에스토니아 등 해외팀과 인천 혼성합창단, 송도로얄합창단, 구월시민합창단 등 총 6개 팀이 모여 합창의 향연을 펼쳤다.
연초에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여 실행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법한데도 2월에 시작하는 연주회는 접하기 매우 어렵다. 국내외 여러 다양한 합창단이 모여 연주를 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에 이번 IFEZ국제합창축제는 상당히 매력이 있는 연주회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단일의 연주로 인해 이번 기회를 놓친 경우 타지역으로 가야 하거나,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합창을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무척이나 아쉽다.
또한, 작년 세계합창대회를 치뤘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2월 제주합창축제보다 규모가 축소된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 인천도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프로 및 아마추어 합창단의 교류의 장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에스토니아 국립대학교 합창단

에스토니아 국립대학교 합창단 ⓒ손주현

에스토니아 국립대학교 합창단(지휘 Hirvo Surva)을 필두로 합창제전이 시작되었다. 합창 축제가 펼쳐진 2월 24일은 에스토니아가 700년간 식민지에서 벗어난 독립기념일이기도 하며 합창의 나라답게 전통의상으로 모든 대원들과 지휘자가 전통 복장을 맞춰 입고 나와 맑은 음색과 화음으로 무장한 에스토니아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Votic Wedding songs’, ‘Solfeggio’, ‘The Birds song’, ‘Ingrian Evenings’, ‘Welcome to Estonia’ 등의 곡을 아카펠라 합창으로 구성하여 곡의 내용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에스토니아의 하늘과 땅과 바다, 숲 등 에스토니아 전체를 노래로 승화시켜 관객들의 많은 호평과 박수를 받았다.

구월 시민합창단 ⓒ손주현

구월 시민합창단 ⓒ손주현

구월 시민합창단(지휘 홍진기)는 인천 남동구를 대표하는 아마추어합창단으로 꾸준한 연주활동을 통해 그 관록을 노래로 녹여냈다. ‘vaka, vakulele’, ‘아름다운 강산’, Any Dream Will Do’ 등의 세 곡을 연주하면서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노래에 담았다. 전체적으로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노랫소리와 표정 등은 마치 소년소녀들로 구성된 듯한 젊은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송도 로얄합창단(지휘 김현아)은 인천시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합창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돋움을 하고 있으며, 2019년부터 꾸준한 연주 성과를 바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합하여 그 소리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합창단으로 성장하고 있다. ‘Gloria in Excelsis Deo’,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아름다운 나라’의 세 곡을 노래 부르며 지존하신 신께 간절함을 담은 가사를, 또한 우리의 삶의 희망을 객석에 전달해 주었다.

인천 혼성합창단 ⓒ손주현

인천 혼성합창단 ⓒ손주현

인천 혼성합창단(지휘 김종훈)은 2019년 조직된 아마추어합창단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나누는 합창단’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노래 봉사를 목적으로 설립이 되었다. 격년으로 정기 연주회를 갖는 등 꾸준한 연주활동을 통한 실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꽃 구름 속에’를 시작으로 자칫 무거워질 법한 분위기를 풀어 주다가 ‘The Lion sleeps tonight(뮤지컬 ’라이언 킹‘)’을 부를 때는 마치 밀림 속에 와 있는 착각을 할 만큼 많은 준비로 재치와 유쾌한 선곡을 통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Inter Mission을 지나고 다음 합창단이 기다려지는 설렘 속에 15분이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지고 곧이어 2부의 시간을 맞이했다.

미나하사탱가라 남성합창단 ⓒ손주현

미나하사탱가라 남성합창단 ⓒ손주현

미나하사탱가라 남성합창단(지휘 Sandri O. Tanauma)
사뭇 무서운 아저씨(?)들로 구성된 합창단으로 입장으로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던 무대. 첫 곡인 슈베르트의 ‘psalm 23’을 남성만의 사운드로 표현함에도 전혀 부족함을 느낄 수 없는 화성으로 불렀고, ‘Gemu Fa Mi Re’곡은 마우메레 지역의 민요인데 인도네시아 동부지역의 축제마다 부르는 곡으로 매력적인 리듬과 활기찬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 합창으로 편곡하여 인도네시아만의 유쾌함을 담아냈다. ‘Joshua Fit the Battle or Jerricho’를 부르며 성가곡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듯 실력을 뽐냈다. ‘Let it Be’는 합창에 목말라 있던 모두에게 추억이란 선물까지 선사하며 관객과 함께 즐거움을 교감하여 2부 순서를 기다렸던 관객들에게 커다란 환호성을 받았다.

미주리 주립대학교 합창단 ⓒ손주현

미주리 주립대학교 합창단 ⓒ손주현

미주리 주립대학교 합창단
미국식 합창단(지휘 Cameron LaBarr)의 진수를 느껴 볼 수 있었던 시간으로 마치 장로교 성가대를 연상케 하는 장중함에서 우러나오는 합창은 모두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Daniel, Servant of the Lord’는 진중함이 느껴졌다면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는 강렬한 포크 락의 음악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다. ‘It’ll Be Alright’는 젊은 감성의 미국식 팝을 합창으로 풀어낸 곡으로 예열을 마치고 미국팀의 하이라이트 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했을 땐 모음북 연주자의 혼신을 담은 연주까지 곁들여 합창축제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연합합창단

연합합창단 ⓒ손주현

연합합창단 (지휘 T.J Harper)
모든 연주자가 하나로 뭉쳐 이번 합창축제의 주제곡인 ‘Pacem’을 불렀다. 마치 각기 다른 나라와 외모와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으나, 외치는 것은 ‘Pacem’, 즉, 평화였다. 그것은 마치 카톨릭의 미사곡 중 ‘Kyrie’ 창조주에게 자비를 구하는 노래인데 그 키리에를 연상시킬 만큼 모든 이들이 원하는 평화의 간절함이 울려 퍼졌다.

축제는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도 전에 끝이 났지만 우리 모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모두 같은 듯했다. 그것은 바로 ‘평화’. 온 인류에게, 또한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연주회였다.
그리고, 이번 IFEZ인천국제합창축제가 남긴 과제도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첫 번째로 너무 빈약한 홍보로 인해 합창 축제를 알고 찾아온 사람보다 합창단 가족이 제일 많은 인원수를 차지함은 안타깝다. 두 번째 합창축제인데 합창이 아닌 불필요한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합창을 집중할 수 없게 했던 요소들은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세 번째로 해외팀도 등장하는데 관객에게 불친절한 안내는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 외국어에 친숙한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타 외국어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데 사회자도 없이 곡의 안내나 설명도 없이 공연이 바로 시작된 것은 계속해서 불편함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창축제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기에 여러 다양한 합창단이 참여하고, 많은 관객들이 참여하면서 노래하는 사회로 변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밝아지고, 단합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갈등의 문제까지도 합창을 통해 화합과 상생의 무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합창에 더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합창을 사랑하기 바란다.
합창은 문화의 다양성을 음악이란 매개를 통해 표현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며, 언어이고, 대화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갖게 되며 이런 의미에서 합창은 우리 인류에게 큰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

손주현

손주현(Son Ju-Hyeon/ 孫周鉉)

인천중구문화재단 주임
솔리스트 및 합창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