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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예술 놀이터를 꿈꾼다
인천한누리학교 문화예술교육
정평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인천에는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공립형 대안학교가 있다. 2013년에 개교를 하였으니 10년이 살짝 넘는다. 역사도 짧고 학교 규모도 고만고만해서 하물며 교사들도 그런 학교가 있었냐고 의아해한다. 다문화 학생에 대한 인식이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개교 당시에는 괜한 곳에 낭비했다고 손가락질을 꽤 받은 모양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학생에서 다문화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3.5%)만 보더라도 당시 학교를 만들어야만 하는 당위성은 분명했다. 지금은 다문화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성과들이 쌓여 일반화 과정에 들어가고 있으며, 지역거점 학교들과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축적된 역량들을 함께 공유하며 서로 배워나가고 있다. 그 안에는 한국어교육뿐 아니라 다문화 학생들의 학교생활 전반에 관한 것이며, 다양한 교과 활동,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이 들어가 있음이 당연하다. 필자는 이 학교 ‘인천한누리학교’에서 미술 교과와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중등 미술 교사이며, 한누리학교에서 지난 2년간 교육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 2023년 교육부 교육기본통계를 보면 다문화학생은 전년 대비 1만 2,533명 늘어난 18만 1,178명으로, 전체 학생의 3.5%에 해당된다. 2014년 6만 7,806명보다 11만 3,372명이 늘어 약 세 배 증가했다.
그 전에 일반 학생들과 결이 조금 다른 우리 아이들을 먼저 이야기해야 이 글을 이해하기가 쉽겠다. 우리 학교는 대부분 학생이 입국하여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시점부터 오는 학교다. 언어로 학습과 정서적 교감이 안 되는 교실을 상상해 보았는가? 그런 아이들이 일반 학교보다 작은 교실에 15명, 초등 7학급, 중고등에 8학급이 있다. 국적도 다양하여 아이들 서로 간의 대화도 거의 어렵다. 겨우 기본적인 어휘를 배우고 어색한 수업이 시작되면 매주 월요일, 그사이 입국한 또 다른 아이가 교실에 새로 들어와 멀뚱히 앉아 있다. 학기 중에 내내 그런 상황이 반복된다. 그렇게 제각각 다른 눈과 귀로 나의 입만을 쫓고 있다.
모국에서 기초적인 예술 교육을 그나마 받아 본 아이는 미술 수업을 눈치껏 따라오기도 하지만, 생애 처음으로 미술 연필을 잡아 보는 아이들도 있다. 색종이 오려 붙이기를 하는 정도의 수업. 내 손보다도 큰 손가락에 문방가위를 끼었으나 그어진 선을 따라 반듯하게 종이를 자를 수 없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더욱이 종교적인 이유로 예술 자체를 터부시하는 문화적 배경을 가진 아이에게 ‘대상의 표현’을 기본으로 하는 미술 수업은 가치관의 혼란 그 자체이다. 그런 이유 말고도 전쟁의 소용돌이나 가정의 붕괴, 가난으로 인한 교육시스템의 부재로 미술이라는 호사(?)스러운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많다. 우리 아이들은 멋지게 이중 언어를 구사하고 좀 더 나은 교육환경으로 유학을 온, 고국에 든든한 뒷배가 있는 그런 아이들이 아니다. 학교 밖 전시장을 간다거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졸아 본 적도, 하물며 강당에 앉아 친구와 수다 떨다 혼나본 경험도 없는 아이들이 가득한 곳이 우리 학교이다.
인천한누리학교의 문화예술교육
그러므로 나는, 우리 학교는 이들에게 어쩌면 생애 처음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아주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보통 학교에서의 평범한 문화예술교육도 한누리학교에서는 매우 특별한 경험 교육이다. 처음 만나는 문화와 예술의 경험이 매우 매력적이고 평화롭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학교보다 좀 더 자유로운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우리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 형태를 학교 안과 밖으로 경계로 삼지 않으며, 밖의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다.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기초 예술(음악, 미술) 교육 외에 문화예술 체험 교육을 주당 2시간씩 편성하였다. 악기, 캘리그라피, 웹툰, 농구, 댄스 등을 선택하여 들을 수 있으며, 이 결과들은 12월 *‘별별축제’로 모여들어 신나게 흘러간다. 그 밖에 대략 한 달에 한 번의 공연교육과 학기당 두 번 정도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자체 예산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학교 밖에서 지원하는 형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 별별이라는 이름에는 학생 개개인이 지닌 ‘다양성을 존중하고 별처럼, 별스럽게 빛나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누리의 정체성으로 연결된다.
2023년 경우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의 기획공연 단체 관람과 ‘찾아오는 아트스쿨’, 학교 자체 기획으로 초등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던 환상적인 언버리버블쇼(비누방울 퍼포먼스)공연과 종이비행기 대표선수들과 함께했던 위플레이 강연 교육, 교육청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샌드아트 공연 등등, 특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나는 예술여행’에 어렵게 선정이 되어 공중퍼포먼스로 꽤나 알려진 ‘도깨비 날다’(프로젝트 날다)가 펼친 난장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공연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비언어적 퍼포먼스 성격이 강한 점이다.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에 제한된 한계가 만들어 낸 특징이다. 언어 학습이 전체적으로 좀 더 향상되면 다양한 장르의 공연도 한껏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천한누리학교의 문화예술교육
교내에 마련된 전시들도 중요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2023년 교내 곳곳에서 열렸던 전시들, 학생교육문화회관의 ‘찾아가는 갤러리’, 남동문화재단의 문화예술복지사업 ‘포근한 문화예술 전시 프로젝트’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한 달 간격으로 교체 전시하여 학교 공간을 갤러리로 만들었다. 뒤에 자세하게 다룰 인천문화재단 지원 <3인3색전> 등 전시장이라는 독립된 공간이 없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예술적 감성을 북돋아 주기에는 충분했다고 자평한다. 특히 기초 문화재단의 출범과 함께, 지역학교의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우리 학교부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반길 일이다. 향후 지속적인 전시 지원과 인접한 소래아트홀의 전시 및 공연 관람, 또는 학교로 찾아오는 기획공연 확대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어 역시 기대된다.
지난 2학기 동안 이루어졌던 ‘어울림 아트 스쿨 프로젝트’는 한누리 문화예술교육의 전체를 아우르는 신나는 예술 놀이터였다. 인천문화재단이 운영비를 지원하고 학교가 자체 기획하여 문화재단-예술가-학교가 이어지는 아주 행복한 예술 실험이었다. 인천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문화예술지원 사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술 소외계층 지원이라는 조건에 우리 아이들은 당연한 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교과 활동과 다른 신나는 예술 놀이터를 만든다는 전제하에 학사일정을 고려하여 단기간(방과후)과 전일(평일)로 나누어 총 13개의 놀이터(강좌)를 만들었다. 모든 놀이터에는 인천 지역의 현장 예술가들이 직접 나섰다. 방과후 도예, 목공교실로 출발하여 12월 한 날 오전 ‘아트데이’에는 민화그리기, 돌판각, 인형극, 북바인딩, 그래피티, 실크스크린, 토우만들기, 케이-팝, 댄스 등 11개의 교실에서 신나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처음 잡아 본 사물놀이 장구채가 어색하지 않게 손에 잘 감겼다. 오후 몸짓교실에서는 아프리카 댄스를 배웠는데 부룬디에서 온 아이 둘은 제 몸에 봉인된 댄스 본능을 일깨웠다. 각 강좌에서 나온 결과물은 날것 그대로 다누리실에 전시되어 한동안 아이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 모든 유무형의 결과들은 아이들 각각이 지닌 개성과 문화다양성의 바탕을 끄집어낼 수 있었던 예술가들의 농후한 이끎의 결정이었다. 수업 후 평가회에서 ‘이처럼 맑은 아이들은 처음’이라고 했던 공통된 소감에서 아이들이 자랑스러웠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어울림 아트 스쿨 프로젝트
어울림 아트 스쿨 프로젝트 <우리 곁으로 온 화가들-삼인삼색전>에는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세 분의 작가를 초대하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간호사였고 이주 후 전업 작가로 들어선 작가, 몽골에서 미술대학을 나와 결혼 이주 후 동화책 그림과 샌드아트를 하는 작가, 2007년 러시아 사할린에서 영구귀국 후 그림을 인터넷으로 독학하신 90세 넘은 할머니 작가, 이렇게 세 분은 평범하지 않았을 삶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 주었다. 하니프 작가는 아이들과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가슴 아프지만, 희망을 담은 아프간 아이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지면의 한계상 작품들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인천 어느 전시장에 꼭 전시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처음 만나는 한국(우리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우리 학교를 소개한다)이 문화와 예술로 평화롭고 매력적으로 비쳤으면 한다. 위에 열거한 한누리의 문화예술교육이 일반 학교보다 특별하지는 않다. 그러나 아이들 안에 잠재된 예술적 역량이나 문화다양성이 우리의 노력으로 작게나마 터져 나와 나중에 봇물 되어 크게 어우러지지 않을까? 그것은 혼종이나 잡종으로 치부되지 않고 개성 넘치는 문화융합이 될 것이라 난 생각한다.
인천한누리학교는 2025년 동아시아국제중고등학교(가칭)로의 변환을 준비하고 있다. 미리 본 학교 비전으로 교육과정 안에서의 문화예술교육 확대가 눈에 들어온다. 예술 교육을 담당하는 이로써 무척 반길 일이다. 나아가 인문 교양과 예술 교육이 적절하게 안배되어 행복한 학교가 되기를 꿈꾼다. 또 새로운 학교가 표피적 다양성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닌 문화적 권리를 존중할 줄 아는 내면적 다양성이 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서로의 문화와 예술을 존중하며 배워가며 살아가는 미래를 새 학교에서 먼저 만나보길 기원한다.
이미지 제공: 정평한
글 정평한
인천한누리학교 미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