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그 ‘때’를 기억하는 양지탕

목욕탕에서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신

유동현

다 ‘때’가 있다. 사람에게만 때가 있는 게 아니다. 건물도 때가 있다. 한창 잘 나가던 건물이 세월의 때를 간직한 채 사라졌다. 주민의 기억 속에서 잊힐 즈음 그 건물은 다시 ‘때’를 만났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던 대중목욕탕 ‘양지탕’은 한 동네의 그때와 이때를 품고 있다.

양지탕은 1982년부터 2019년까지 37년간 문을 열었던 동네 목욕탕이다. 이 목욕탕의 이용객은 수봉산 남쪽 구릉에 자리 잡은 용현1, 4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이었다. 이 동네는 산 밑 양지바른 곳에 둥지를 틀었다. 햇살 좋은 마을에 문을 연 목욕탕이라 ‘양지탕’이란 간판을 단 것으로 나름대로 추정해본다.
양지탕은 ‘아리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다. 실향민들은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하루하루 살았다. 그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평생 살았다. 그 마음이 쓰리고 아려 주민들은 몇 년 전 이곳을 ‘아리마을’이라 스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언덕배기 골목길마다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벽화가 이어진다.

용현동 아리마을 속 양지탕

용현동 아리마을 속 양지탕

예전에 목욕탕은 한 동네의 중요한 편의시설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앵커 시설이자 허브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목욕탕 주변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 모였던 동네 거점이었다. 이른바 ‘탕(湯)세권’이었다. 목욕하러 왔다가 세탁소에 들러 옷을 맡기고 오랜만에 때를 민 김에 머리까지 광내기 위해 미용실이나 이발소를 들렀다. 아이 데려온 엄마는 분식집에서 떡볶이 한 접시 시켰고 이왕 나온 거 구멍가게에서 주전부리나 저녁 찬 거리를 사 갔다. 목욕탕 덕분에 주변 가게도 성업을 했다.
목욕은 몸의 때뿐만 아니라 마음의 때도 밀어내는 행위다. 누구에게나 덜어내고 싶은 ‘때’가 있다. 슬픈 기억, 아쉬움, 걱정거리, 고민…, 목욕만 해도 이것들을 밀어낼 수 있어 개운한 맛이 있다. 새로운 시작을 할 때 혹은 의지를 다질 때 특히 무언가를 강하게 기원할 때 우리는 목욕을 했다. 동네 목욕탕에서도 얼마든지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할 수 있었다.

1982년부터 2019년까지 허연 연기를 뿜었던 굴뚝

1982년부터 2019년까지 허연 연기를 뿜었던 굴뚝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허연 연기를 내뿜던 목욕탕 굴뚝만 봐도 왠지 모를 푸근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덩그러니 남은 굴뚝은 사라지는 동네 풍경의 처량한 소재일 뿐이다. 빨간 벽돌의 네모난 굴뚝은 랜드마크였다. 당시 웬만한 곳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그 굴뚝을 보며 동네로 접어들었고 낯선 길도 찾을 수 있었다.
목욕탕은 추억의 공간이다. 대형 찜질방, 사우나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목욕 후 시원하게 들이켜던 바나나 우유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새롭게 변신한 양지탕에 들어서자 옛 기억이 살아났다. 목욕은 연중행사였다. 명절맞이 목욕탕에는 얼마나 사람이 많았던지 빈 로커가 없었다. 그냥 옷을 탈의실 마루 한쪽에 벗어 놔야 했다. 물바가지도 차례가 오지 않았고 탕 속은 시루의 콩나물처럼 사람들로 빼곡했다. 가끔 주인이 들어와 잠자리채 같은 뜰채로 때를 걷어냈던 장면이 떠올랐다.

새롭게 변신한 양지탕의 지상 1층은 사랑방, 프로그램실로 지상 2층은 돌봄·놀이 공간, 교육실로 그리고 지상 3층은 아리마을 경로당으로 구성돼 있다. 이밖에 지하 1층은 다목적실, 아카이브 공간으로, 그리고 옥상은 어울림 정원으로 꾸며졌다. 만남과 나눔의 휴식 공간으로 그 역할을 이어가게 됐다.

프로그램실로 변한 1층 여탕

프로그램실로 변한 1층 여탕

돌봄·놀이 공간으로 변신한 2층 남탕

돌봄·놀이 공간으로 변신한 2층 남탕

양지탕의 ‘그때’를 보여주는 옛 지하 보일러실

양지탕의 ‘그때’를 보여주는 옛 지하 보일러실

목욕탕의 틀은 유지되었다. 큰 탕, 작은 탕, 사우나실 등의 골격은 그대로 남아 있다. 틀면 바로 물이 쏟아질 것 같은 샤워기와 습기로 물방울이 맺혔던 타일 벽면도 한쪽에 남겨 두었다. 특히 보일러실로 사용했던 지하는 양지탕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뜨거운 물을 공급했던 쇠파이프 배관이 여전히 울퉁불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목욕탕의 과거와 변신 과정의 사진들이 파이프와 벽면에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 65세 어르신을 위한 한방주치의 교실, 관절 강화 교실을 비롯해 일반 주민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캘리그라피, 요가, 숏폼 제작, 키즈사이언스 등이 요일마다 진행된다.

어서오세요 “문화 예술로 목욕합니다

어서오세요 “문화 예술로 목욕합니다”

이미 목욕탕은 ‘문화’시설이었다. 목욕‘문화’라는 말이 있었다. 물론 그때의 목욕문화는 보건 위생이나 목욕 에티켓에 방점을 찍었다. 다른 시각, 요즘 시선으로 본다면 충분히 ‘문화’의 범주에 포함된다. 목욕탕이란 공간에서 동네 문화가 수증기처럼 늘 모락모락 피어났다. 딱히 모여서 이야기 나누던 공간이 없던 시절 목욕탕은 요즘 말로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했다. 알몸 무장해제 상태로 이웃집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동네의 대소사를 나누던 ‘찐’ 사랑방이었다. 목욕탕은 오래전부터 공중의 대중적 문화 공간이었다.

‘목욕합니다’. 모든 목욕탕에 걸려 있는 표찰이다. 목욕의 주체가 손님인지 주인장인지 모호한데 그게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37년 동안 주민의 ‘때’를 간직한 양지탕은 이제 다시 ‘때’를 만났다. “양지탕, 이제 문화 합니다”

유동현

글/사진 유동현 (劉東鉉, You Donghyun)

전, 인천시립박물관장.
<굿모닝인천> 편집장과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역임.
주요 저서 『골목, 사라(살아)지다』, 『동인천 잊다 있다』, 『시대의 길목 개항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