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미술사를 살피고, 밝히기 위한 시작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참여 후기

고경표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사업은 인천시립미술관 개관을 준비하기 위해 2023년 5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되었다. 이는 하나의 줄기로 서술되지 못한 지역 미술사를 제대로 보고, 쓰고, 말하기 위한 시작이라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 인천 지역의 역사와 미술사라는 학문의 특이성을 고려하여 1883년 개항부터 한국전쟁까지로 시기를 한정했고 그에 따라 연구의 내용적인 범위와 방향을 설정하였다.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보고서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보고서

연구진(박석태, 정호경, 고경표)은 본 연구를 통해 ‘인천 미술사를 보편적인 미술사의 범주로 편입하고, 서울 및 타지역과의 영향 관계를 파악하여 지역이 주체가 되는 건강한 미술사의 모델을 세우고자’ 했다. 더불어 이 연구의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은 건립 예정인 인천시립미술관이 수행하게 될 지역 미술사 연구에 있어 하나의 기준점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간의 인천 미술사는 매우 단편적으로 수행되었기에, 개항기부터 해방공간에 이르는 시기의 인천미술의 사건들을 하나의 ‘사실’로 보고 연대기 형태로 체계화를 시도한 것이다.

알려져 있듯 인천은 1883년 개항이라는 특수한 역사로 인해 급속하게 변화된 도시이다. 따라서 연구진은 한국사 및 미술사에서 보편적으로 설정하는 근대의 기점과는 달리 지역성을 고려하여 인천 미술사에서의 근대 기점을 개항이 이뤄진 1883년으로 설정하였다. 사실 한국에서 근대에 대한 기점 논의는 한국사와 미술사 분야에서도 지속해 오고 있는 담론 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근대’를 통한 국내인들의 경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시각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특히 미술사는 19세기부터의 움직임을 조선 미술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것인가, 혹은 서구 미술의 이식으로 인한 태동과 변화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공존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 연구진이 기존의 연대 설정보다 한참 내려가는 1883년을 인천 근대미술의 기점으로 본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연구진은 지리적인 범위에서의 인천이 아닌, 개항 이후 인천이라는 공간이 갖게 된 입체성을 고려했다. 현재 관점에서 개항장 인천을 다양한 맥락이 유입되고 교차하고 발현되었던 국제적이고 혼종적인 시공간으로 설정한 것이다. 다음은 그 같은 경험과 시각이 나타나는 시각 자료와 인천 연고 조선인 작가 및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 화가들의 활동 양상과 작품에서 나타난 이국 풍경이다. 이중 시각 자료는 정호경이 ‘개항기 인천의 근대성과 문화 접변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1899~1900년 제작된 파리만국박람회 대한제국관 계획 도면 자료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 대한제국관 계획에 제물포 거리가 조성될 예정이었는데 이는 상업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방향이었다고 한다. 19세기 제국이 주도한 박람회는 강대국들의 부강함이 스펙터클하게 전시되는 시각적인 경험의 장이었다. 그 가운데 대한제국이 1900년의 파리만국박람회 참여를 계획하면서 제물포를 국가 소개의 대표 주제 중 하나로 잡았다는 것은 개항 이후 도시 인천이 갖게 된 위상과 상징성을 반증하는 예시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확인되는 개항 이후 인천 작가들의 활동이다. 박석태는 개항이 만들어 낸 인천 미술의 근대성을 전람회 개최와 미술 단체 결성,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출품과 같은 화가들의 활동과 작품에서 찾았다. 감상을 목적으로 사물을 보는 행위는 철저히 근대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며 여기에는 서화(書畫)가 아닌 미술(美術) 개념의 도입과 화가라는 정체성과 같은 새로운 인식이 작용한다. 인천에서 감상과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전람회가 시작된 것은 1916년이었고, 1920년대부터 재조일본인 화가들의 전람회가 꽤 개최되었다. 또한, 1922년 시작된 조선미전 입상자의 경우 초기에는 인천에 연고를 둔 재조일본인 화가들이 주를 이뤘으나 1935년 태평양미술학교 출신인 김영건의 입상 이후 김진태, 이무영, 김정환, 김종식 등의 조선인 화가들의 입선이 이어졌고 출품작 대부분이 지나정(支那町, 중국인거리)과 같은 이국 주제, 서양식 건축물이 있는 풍경을 담은 서양화나 수채화였다.

드로르 드 글레옹 남작이 계획했던 변경 전 대한제국관 도면. 이곳에 제물포 거리가 함께 조성될 예정이었다. 1898-1899년경. 출처: 프랑스국립아카이브,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인천문화재단, 2023.12 인용

드로르 드 글레옹 남작이 계획했던 변경 전 대한제국관 도면. 이곳에 제물포 거리가 함께 조성될 예정이었다.
1898-1899년경. 출처: 프랑스국립아카이브,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인천문화재단, 2023.12 인용

쿠마가미 추우타(隈上忠太), 京城, , 1935년 14회 입선작. 인천문화재단 제공,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인천문화재단, 2023.12 인용

쿠마가미 추우타(隈上忠太), 京城, <지나가(支那街)>,
1935년 14회 입선작. 인천문화재단 제공,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인천문화재단, 2023.12 인용

이요다 아츠시(伊與田溫), 黃海, , 1933년 12회 입선작. 인천문화재단 제공,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인천문화재단, 2023.12 인용

이요다 아츠시(伊與田溫), 黃海, <지나가(支那街)>,
1933년 12회 입선작. 인천문화재단 제공,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인천문화재단, 2023.12 인용

전술했듯이 본 연구의 범위는 해방공간까지를 포함한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해방공간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사이에 끼어있는 과도기나 찰나로 인식될 수 있는데, 특히 인천미술은 그 같은 관점에서 매우 단편적으로 서술되었다. 물론 해방은 급작스럽게 도래한 것이기에 해방공간에는 그에 따른 사회정치적인 혼란이 있었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성향의 인물들이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었고 미술계는 물론 인천의 미술 문화도 그러한 영향권 아래 놓여있었다. 사실 인천이라는 도시가 꼽아온 가장 큰 문화적인 약점은 지리적인 부분에서 유래한다. 인천은 서울의 주변 도시이자 길목으로 인식되고 사용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 자원의 유출이 끊이지 않았고 도시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구축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기존의 시각을 전환하여 인천을 중앙부터 시작되는 사회문화적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지역으로 보고,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미술 문화의 변화와 미군정 통치의 영향력이 인천에서 빠르게 작동된 사례를 당시 해방공간에서 조직된 중앙 미술 단체들에서 활동했던 인천 연고 화가들의 존재와,인천시립박물관과 인천시립우리예술관의 개관 및 관련 전시를 통해 제시했다.

이경성과 이건영,

이경성과 이건영, 인천시립박물관 앞에서. 맨 뒷줄 가운데 안경 쓴 사람이 이경성 관장, 오른쪽이 화가 이건영.
출처: 『인천투데이』;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 인천문화재단, 2023.12 인용

지금까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인천이 다뤄지지 않았던 배경에는 인천에서 있었던 미술사적 사건이 미미한 탓도 있었지만, 그간의 미술사가 중앙중심적인 관점에서 사유 된 경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인천 및 지역 미술사 연구는 대부분 파편적으로 진행되었고, 최근에야 각 지자체 및 연구자들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들이 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인천은 박석태의 지적처럼 특정한 미술가를 내세우기보다는 ‘인천을 통해 도입된, 당시로서는 최신의 서구 문물 수용이라는 측면에만 주목하는 양상을 보여 ‘최초 담론’이 홍수를 이루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술사가인 최열의 언급처럼 지역 미술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관점과 시선, 시각의 전환이 중요하다. 분명히 지난 시간의 활동들은 존재했기 때문에 비록 파편일지라도 현재 우리가 말하고 있는 지역 미술사의 단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관점들과 다른 질문을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이어 붙이지 못한 것들을 찾고 연결하여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거듭 서술해 나아가야 한다. 물론 그 시작점은 단 하나로 고정될 필요는 없다. 지역 미술사를 밝히는 일은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경험과 감각, 문화를 전환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인천미술사 콘텐츠 발굴 연구는 그 시작점 중 하나로 이를 통해 지역 미술사를 살피는 시선이 더 다양해지길 기대한다.

글 고경표

미술사를 전공했고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치학을 공부 중이다. 2013년부터 인천에 거주하며 도시, 사회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탐구 대상을 발견하고 그에 내재된 이야기와 자료를 아카이브 하여 다양한 콘텐츠로 변주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표 프로젝트로는 <국가의 환영(2013)>, <비욘드 레코드(2016~2023)>, <소리로 기억하는 도시 부평 신촌(2019)> 등이 있고, 2019년 <시각 100호 기념 이철명 기증 인천미술자료아카이브(스페이스빔, 아르코)>展의 기획위원으로 참여 이후 인천미술사 관련 자료들을 찾고, 정리해왔다. 공저로는 『신흥동 일곱주택』(2020), 『비욘드 레코드;1985-1995 인천록메탈연대기』(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