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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 인간 그 너머를 향하여

2023 인천미술 올해의 작가 오원배 개인전 <부유/현실/기록>

김연희

1. 부조리, 개항이라는 환경에 던져진 존재

인간 실존의 문제를 일관된 작업 주제로 진행해 온 오원배(吳元培, 1953~) 작가가 2023 ‘인천미술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전시 중이다. (인천아트플랫폼, 2023.10.7.~2024.3.3.) 인천에서 출생했으며, 한국과 프랑스에서 회화를 전공한 예술가로 성장한 작가에게 개항지로서의 인천은 작업의 모티브이자 부조리한 인간 실존 문제를 드러내는 자양분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2층 아카이브 전시 벽면 드로잉 작품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풍경은 바로 청관(淸館, China Town)이다. 이곳 일대는 1884년 청국이 일본을 견제하며 체결한 통상조약[仁川口華商地界章程]과 관련된 곳으로 중국인이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청나라의 관청이 있던 동네다. 이후 청관은 1937년 중일전쟁을 비롯해 현재의 ‘차이나타운’에 이르기까지 부침(浮沈)을 반복하고 지금은 이곳에 인천미술작가 전시가 있다. 마치 인간이 그 의지와 상관없이 ‘환경에 던져진 존재’로서 사회 제도 속에서 부조리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작가의 1970년대 아카이브에는 유신독재의 사회 부조리와 관련된 탈을 쓴 익명의 인간이 최초로 등장하는가 하면 어선들 사이로 옛 일본식 건물들과 당시 호텔들, 그리고 서양식 근대 건축물인 답동성당이 스케치 되어 있다. 그리고 198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오는 인간 실존에 관한 관심은 사회적 환경과 제도와 맞물려 전쟁과도 같은 인간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드로잉 작업 노트에서 그 고민의 과정을 보게 된다. 사회적 긴장이 완화되는 21세기에 들어서는 기하학적인 형태 및 실험적인 재료와 기법 사용이 다양해지면서 인간 자체의 실존 문제에서 인간과 기술의 대립적 관계에서 오는 긴장으로 관심이 이동하는 양상을 보인다. 매 시기 부조리한 사회적 환경에 던져진 존재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국 ‘인간 소외’, 그리고 오원배 작가에게 그 발언은 인간의 몸을 통해서다.

포스터 및 전시 전경
포스터 및 전시 전경

포스터 및 전시 전경

2. 부조리, 소외에 저항하는 몸

오원배 작가에게 인간 존재의 탐색은 억압적인 환경에서 휴머니티의 경계를 묻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인공지능 시대에 부상하는 사회 문제에 관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생존을 위해 개인의 사적 공간이 사라지고 국가 주도로 결정된 ‘보이는 손의 위력’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림1) 또한 이순신 동상으로 상징되는 광화문 광장에서 외치는 자기만의 큰 목소리들이 대형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올 때 합리와 이성을 전제로 한 근대적 휴머니티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작품 속 정의의 여신 디케에게 물어보지만, 답은 없어 보인다. (그림2) 사이보그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로봇 인간과 인공지능의 출현은 인간의 존엄을 위협받는 오늘날의 현실이다. 국가 시스템 혹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기계처럼 작동하는 ‘인간의 기계화’에 대한 부조리만큼이나 디지털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밀려 실존을 위협받는 ‘기계의 인간화’ 문제 역시 결국에는 ‘인간 소외’ 현상을 낳는다.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은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저항은 거대한 4점의 대형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인간의 절규하는 몸이다. (그림3) 그래서 그의 작품 속 인간은 주어진 환경을 피하지도 정주(定住)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희망은 대형 작품 속 인간만이 아니라 이제 새로이 피어날 생명의 근원인 나무뿌리 사이, 인간 너머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제, 2023, 천 위에 혼합재료,

(그림 1)
무제, 2023, 천 위에 혼합재료, 520×540cm
Untitled, 2023, mixed media on cloth, 520×540cm

무제, 2023, 천 위에 혼합재료,

(그림 2)
무제, 2023, 천 위에 혼합재료, 480×600cm
Untitled, 2023, mixed media on cloth, 480×600cm

무제, 2023, 종이 위에 아크릴릭

(그림 3)
무제, 2023, 종이 위에 아크릴릭, 106×76cm
Untitled, 2023, arcrylic on paper, 106×76cm

3. 부조리, 인간 너머 생명

2층 전시에서 보이는 신작 드로잉 작품들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는 작가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직설적인 몸의 재현적 경향보다는 과감히 생략된 일부만을 보여주거나 감각적이고 기하학적인 표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스펙트럼은 ‘사유와 상상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인간과 자연, 도형과 선들이 드로잉의 소재로 사용되는데 특히 재료에 대한 탐구와 시도를 볼 수 있다. 안료 가루를 표현에 적합하도록 사용하거나 종이를 오려 붙이는 변화된 방식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반복적 형상은 단순화된 자연의 이미지다. (그림4) 소외된 인간의 부조리 문제는 점차로 인간을 넘어서 생명으로 향하고 있다. “자연도 문화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도나 헤러웨이(Donna J. Haraway)의 말대로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인간 스스로 정해놓은 관념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무제, 2023, 종이 위에 혼합재료,

(그림 4)
무제, 2023, 종이 위에 혼합재료, 64.5×47cm(2)
Untitled, 2023, mixed media on paper, 64.5×47cm(2)

인공지능 시대, 변화된 환경은 신체의 일부가 된 SNS에 자신의 정보를 알려주고 그 자신을 세계와 연결한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작품 속 인간들은 또 다른 실존의 경계에 놓여 있다. 이런 변화하는 세계 속 그 과정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은 살아있는 생물이며, 현실과 부딪히고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예술 철학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일관된 관심사인 인간의 실존은 죽음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부조리한 존재임과 동시에 죽음을 넘어서는 무언가와의 접속을 통해 영원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한다.

작품 이미지: 김연희 제공

포스터 및 전시 전경: 인천아트플랫폼 제공

김연희

글 김연희 (金鉛姬, Kim yoenhee)

「자크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 과 ‘포스트 인터넷’ 아카이브 이미지에 대한 연구」로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천대학교에서 현대미술 이론 강의를 한다.
주요 논문으로 「차용의 관점에서 본 ‘포스트프로덕션’」,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과 지연된 사후 작용」,
「조르주 바타유의 관점에서 본 ‘비정형’과 불가능의 미학」, 「‘지연된 사후 작용’의 관점으로 본 비평에 대한 고찰:1970년대 단색화를 중심으로」
등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