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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예전에 어린이였어! 놀이가 가장 필요한 순간

전시 <우당탕탕 아빠가 만든 놀이터> 시즌 2

김규혁

나는 일곱 살 쌍둥이를 키우는 아빠이자 문화기획자로 다양한 어린이 문화 체험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릴 때는 하나라도 더 경험시켜주겠다고 주말마다 박물관으로 체험관으로 여기저기 다니기 바빴다. 작년부터는 공원에서만 뛰어놀아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고 파랑새처럼 가까운 곳에서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남동소래아트홀 갤러리 화소에서 어린이 체험전시 <우당탕탕 아빠가 만든 놀이터> 시즌 2(2024.1.2 ~ 3.2)가 있다는 소식에 바로 달려갔다. 체험 전시에서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아이들과 즐기고 돌아왔다.

아빠가 만든 놀이터_포토존

아빠가 만든 놀이터 포토존

아빠가 만든 놀이터_포스터

아빠가 만든 놀이터 포스터

체험 공간은 크게 3가지 주제로 ‘못 말리는 세탁소, 아빠 곰 캠핑장, 장롱나라 놀이터’이다.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주는 다양한 놀이 형태가 눈에 띄었고 아빠인 나에게도 익숙한 소재와 주제라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 잘 다듬어진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공간에 놀러 온 듯했다.

하지 말라는 것들을 해보는 공간

첫 번째 테마는 ‘못 말리는 세탁소’다. 바닥에는 다양한 옷 모양의 밑그림들이 그려져 마음껏 색칠할 수 있었다. 옷에도 그릴 수 있게 물에 지워지는 펜이라고 소개하자 망설임 없이 엄마 옷에 바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옷에 토끼 그림을 그려주자 방긋 웃었다. 그동안 집에서는 어찌 참았던 걸까. 옷이 더러워질까 봐 미술 가운을 입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이라 짜릿함을 느끼는 것인지 재미있어했다.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하더니 안내자분들의 친절한 설명과 무한한 칭찬에 자신감을 내기 시작했다. 이어진 체험으로 작은 손전등을 이용해 야광 빛 그림을 그렸다. 어둠 속에서 불빛 공 잡기 등 공간을 잘 활용해서 뛰어다니며 빛 놀이를 했다. 이때 아이들이 정말 많이 뛰었다. 아주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슬라이딩도 하고 우주 공간에서 파닥이듯 신나게 뛰어놀았다. 공간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체험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는데 좀 더 여유 있게 놀이를 만끽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못 말리는 세탁소_꽃을 만든 아이들

못 말리는 세탁소 꽃을 만든 아이들

못 말리는 세탁소_불빛 공 잡기 놀이

못 말리는 세탁소 불빛 공 잡기 놀이

아빠와 아이들이 협동하는 공간

두 번째 테마는 ‘아빠 곰 캠핑장’이다. 해먹과 바비큐 장비, 화로와 장작, 돔 텐트가 있어 캠핑장의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온 듯 꾸며놓았다. 쌍둥이들은 캠핑 장비가 익숙하여 금방 여기저기를 누볐다. 해먹에 누워 그네를 타기도 하고 장작 모양으로 만들어진 스펀지를 탑처럼 쌓아 올렸다. 캠핑장 한쪽에서 전구별 만들기 체험을 진행했다. 백열등 모양의 통에 해양생물 스티커를 꾸미고 물과 반짝이를 넣으니 진짜 캠핑에서도 쓸 수 있는 훌륭한 감성 랜턴이 완성되었다. 다음 캠핑하러 갈 때 사용하면 좋을듯하여 그때까지 잘 보관하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종이 가루가 수북이 쌓여있는 돔 텐트 안에서는 숨겨진 장난감을 찾아보았다. 처음엔 몇 마리 찾고 말겠거니 했는데 모든 공룡을 다 찾고 나서, 종이 더미 속에 모두 다시 숨기고서야 텐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아이들과 같이 놀았더니 아내는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나 보인다며 웃었다.

아빠 곰 캠핑장_돔 텐트에서 공룡 찾는 중

아빠 곰 캠핑장 돔 텐트에서 공룡 찾는 중

아빠 곰 캠핑장_장작탑 쌓기

아빠 곰 캠핑장 장작탑 쌓기

아빠 어릴 적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공간

세 번째 테마는 ‘장롱나라 놀이터’ 다. 아빠 곰 캠핑장에서 장롱 모양의 커다란 문을 지나가면 또다시 새로운 놀이 공간이 펼쳐진다. 고무신으로 날리는 커다란 새총, 암벽등반과 폭신한 쿠션, 베개로 만든 붕붕 카, 장롱에 미끄럼틀이 연결된 볼 풀장이 반겼다. 가장 활동적인 테마로 아이들의 에너지를 폭풍 방전시킬 수 있는 공간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어린 시절, 집안의 모든 것이 놀이가 되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층간소음 때문에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이야기하기 바쁘다. 매번 조용히 하라던 아빠가 오히려 쿵쾅거리며 놀자, 신기한 듯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아빠도 어릴 때 이렇게 놀았어”라고 말해주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어린 나와 쌍둥이는 오랜만에 신나게 뛰어놀았다.

어느덧 90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끝나고 잠깐 숨을 돌리며 천천히 포스터를 다시 보았다. ‘어른이 된 지금,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는 것들은 결국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들이며, 어린 시절 어른들도 했던 것들이다.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놀자는 생각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다’라는 작가의 이야기가 매우 와닿았다.

장롱나라 놀이터_베개 스케이트보드 경주

장롱나라 놀이터 베개 스케이트보드 경주

장롱나라 놀이터_장롱나라 암벽등반 하기

장롱나라 놀이터 장롱나라 암벽등반 하기

대학원에서 도시공간문화를 전공하며 안타깝게 생각한 부분 중의 하나는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거나 도시의 담벼락을 경계로 나뉘고 있다는 것이다. 각박하고 획일화된 도시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창의와 융합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는 편리한 공간뿐만 아니라 열린 공간도 필요하다. 모두가 자유롭게 소통하는 ‘오픈 스페이스’에서는 마을이 가진 다양한 층위와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있던 큰 나무 아래 마당이나, 동네 슈퍼 앞 평상, 골목길과 놀이터가 그런 역할을 해왔다. ‘아빠가 만든 놀이터’는 비록 실내 공간이었지만 다양한 장소가 가진 특성들을 빌려 아이가 마음껏 상상하고 서로가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놀이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아이들의 놀이방식에 아빠의 따뜻한 마음이 더해진 이러한 놀이 공간이 도심 속 작은 대안으로 곳곳에 생겨나길 바란다.

김규혁

글/사진 김규혁 (金奎赫, Kim Kyuhyeok)

일곱 살 쌍둥이와 함께 커가는 아빠. 성균관대 도시공간문화 전공 석사과정 중이다. 현재 부평문화원 문화사업과장으로 지역 문화예술사업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