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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지역문화재단, 2024년에는 과거와 미래로 협력하라
이현식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문화재단이 인천에는 모두 여섯 곳이 있다. 인천광역시가 만든 인천문화재단을 비롯해서 부평구가 만든 부평구 문화재단, 서구가 만든 인천서구문화재단, 연수구가 만든 연수문화재단, 그리고 중구에서 만든 중구문화재단과 남동구가 만든 남동문화재단이 그것이다. 아직 다섯 곳의 자치단체인 강화와 옹진, 동구, 미추홀구, 계양구에는 문화재단이 없다. 행정구역 개편을 앞두고 있어서 일부 지연은 될 수 있겠지만 조만간 이들 자치단체에서도 문화재단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문화재단은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이나 표현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거나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시민들의 문화 활동을 위해서도 역시 소액이지만 자금을 지원하고 공간을 빌려주고 교육활동을 지원한다. 또 공공문화시설을 잘 운영해서 시민들이 조금 더 편하고 즐겁게 방문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문화재단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은 주민들이나 예술가들이 누리는 혜택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재단 운영에 비용이 든다고 꺼릴 일은 아니다. 당장 사업의 효과가 계량화된 수치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문화는 안 보이는 곳에서 조금씩, 그러나 어느 날 확연하게 효과를 발휘한다. 선진국은 경제적으로만 부유한 곳이 아니다. 문화가 그 기초를 이룰 때 그 공동체는 오랜 기간 그 영향 아래에서 번영을 누린다. 그런 점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 문화재단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문화가 행정구역에 따라 엄밀하게 구별되는 건 아니듯이 개별 문화재단은 자기가 맡은 일을 하면서도 서로 협력해서 인천의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더욱 풍요로운 문화를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자기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2023년 8월 여섯 개의 문화재단이 모여 ‘인천 지역문화재단 대표자회의’를 결성한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문화는 서로 힘을 합할 때 그 영향과 효과는 더욱 크고 넓게 퍼질 수 있는 것이다.
인천 지역문화재단 대표자회의 출범식 Ⓒ인천문화재단
그렇지만 인천의 문화재단들은 설립된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아직 안정적인 운영 체제를 확립하지 못한 곳이 많다. 인천문화재단이 그래도 역사가 오래되어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이하고 부평이 2007년에 업무를 개시해서 인천 다음으로 오래된 곳이지만 나머지는 아직 설립된 지 10년 미만이어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연수, 중구, 남동구는 설립된 지 아직 5년도 채 되지 않아 걸음마 단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각자 사업들을 열정적으로 기획해서 성과를 내려고 그 어느 곳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므로 문화재단 간 협력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정보도 나누면서 사업 노하우도 쌓고 직원들의 역량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신생 문화재단은 짧은 경험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고 선발 문화재단은 신생 문화재단으로부터 새로운 트렌드를 배울 수 있다. 직원 간에도 서로 소통할 만큼 친밀감을 만든다면 사업 방식도 공유하고 정보도 교류함으로써 사업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
2023 인천지역문화재단 공동바자회 개최 및 공동바자회 기부금 전달식
그래서 문화재단 간 협력을 위해 처음 시도한 일이 직원 공동 워크숍이었다. 2022년에 시작된 직원 공동워크숍은 2023년에는 1박 2일로 시간을 늘리고 프로그램을 심화시켜 진행했는데 참여한 직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2023년 8월 재단의 대표들이 모여 재단 간 협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대표자회의’를 만든 것도 이런 사전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2024년 인천의 지역문화재단은 한 걸음 더 협력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심화시켜야 할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직원들의 공동 워크숍 수준에서 협력을 논하기에는 너무 초보적이고 단순하다. 직원 워크숍은 기존에 진행해 왔던 것을 더 잘 키워가야 하겠지만 어떤 형태의 협력이 필요할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우선 첫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그동안 각 문화재단이 해온 사업의 성과들을 예술가와 시민들이 더 잘 찾아보고 공유할 수 있게 자료를 모으는 일이다. 과거 사업의 성과는 모두 인천문화예술의 역사이고 자산이다. 거기에서 나온 창작품도 있고 활동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들도 있을 것이다. 작품은 시민들이 감상하고 결과물은 더 넓게 공유되어 더 새로운 기획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연구의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고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걸 아카이브(archives)라고 하는데 이런 아카이브야말로 재단이 각자 만들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시민과 예술가가 활용하게 만든다면 그 성과는 더 빛날 것이다.
2024년 인천문화재단이 주도해서 ‘인천문화예술아카이브’를 기획하고 여기에 다른 문화재단이 적극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023년에는 준비 작업을 했는데 각 재단이 적극 호응하고 있어서 2024년 말 정도면 시범 오픈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천의 예술가들에 대한 정보나 그들의 창작 결과에 대한 목록,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나 시민 문화 활동, 연구 결과나 각종 출간물들도 이 아카이브 플랫폼을 통해 시민들에게 서비스가 된다면 지역 문화를 더욱 풍성히 하는 기반이 되지 않을까 한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문화재단이 당면한 여러 정책 현안에 대한 토의와 해결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포럼 운영이다. 그동안 문화재단은 각자 정책적 고민을 재단 안에서 별도의 토론회나 포럼을 운영하면서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 현안은 사실, 관심 있는 일부 시민이나 전문가의 영역이므로 개별 재단으로서는 참여자도 많지 않았고, 정책적 의제 역시 비슷한 것이 많았다. 토론회에 발제자나 토론자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면면 역시 중복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문제를 힘을 합해 몇 차례로 나누어 각 재단에서 순회하며 개최하고 기획도 공동으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제의 중복도 막고 참여자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제안된 정책 현안에 더 많은 힘이 실릴 수도 있다. 목소리가 모이기 때문에 효과를 더 크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예산도 절감될 수 있다. 그 외에 각 재단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화적 현안에 대한 고민을 이런 자리에서 더욱 깊이 공유하고 공동으로 대안을 만들어가다 보면 협력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2024년은 이런 두 측면의 사업에서 성과를 낸다면 협력의 새로운 단계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과거의 역사를 공유하는 아카이브와 미래를 모색하는 정책 대안에 대해 협력의 틀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를 다루는 일에서 인천의 지역문화재단이 함께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 단계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협력 모델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런 협력 사업은 사업 방식만 안착한다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매년 추진이 가능한 것이기에 그 효과도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은 새로운 협력 사업으로 인천의 지역문화재단이 더욱 성숙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현식
인천문화재단 정책협력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