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이찬우

이찬우

이름: 이찬우 (李瓚雨, LEE CHAN-WOO)
출생: 1958년
분야: 조각
인천과의 관계: 40여 년간 사회활동(예술 등)하며 살아가고 있는 제2의 고향

주요학력
1979 국립충북대학교 미술과(조소전공) 졸업
1986 홍익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 졸업
주요경력
한국미술협회 회원, 인천미술협회 회원, 한국구상조각회 회원, 한국조각가협회 회원, 인천조각가협회 회원
2020 대한민국미술대전 조각심사위원역임
인천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조각심사위원역임
인천예술고등학교 조소전공교사13년
인하공업전문대학교 산업미술과 강사2년(2학기)
충북대학교 미술과 강사1년
인천조각가협회 회장 5년
인천연수미술협회 회장 2년
2019 인천+워싱턴+하와이미술교류전 운영위원장 역임
한국미술협회조각분과이사 역임
인천미술협회조각분과위원장 역임
현재: 사)인천미술초대작가회 조각분과이사
주요수상내역
1978 충북도전 조각부문입상- 충북미술협회
1991 인천시상징조형물공모 우수상(1등상)- 인천시청
1995 전국교직원미술전람회 조소부문 우수상
2014 옥조근정 훈장 (미술교육)- 대한민국
2021 계양구공공미술선정 기획 총괄
주요 작품소장처
인천뉴코아백화점(희망이 있는 전설)
부평웨딩홀(꼬마신랑과 각시)
인천농협중앙회(신토불이)
인천예술고등학교 (한마음상)
인천국제공항 비룡지적삼각점조형물(2002)
한화에코메트로 7단지 아파트(무지개동산)(2010)
서울한화미술관(자연과 나 2010)
부평 파크타운 공동주택 (화합상 2016)
부평 더갤러리 공동주택(방파제의 하모니2017)
안산 엔즈타워 오피스텔(꽃반지 2017)
성남 오피스텔(꽃을 피우고 2019)
안산반달섬 더 하이브 생활형복합건물 (발아-대지로부터 2023)

1.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애착을 갖는 작품

(220x280x120mm 석고, 1999)

<소중한 것1> (220x280x120mm 석고, 1999)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소중한 것을 보자기에 싸서 간직해 왔다. 보자기가 지닌 문화적 정체성과 그 정서가 가진 소중한 의미도 있지만 그 자체의 조형성도 뛰어나다.

오래전 작고하신 처의 할머니 유품을 장롱 안에서 본 것이 이 작업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평소 고이 모아두신 지폐는 손수건(보자기)에 싸여져 있었고, 이것은 내 과거 기억 속에 묻혀있던 “어머니가 건네주신 지폐 보자기 묶음”을 떠오르게 했다.

아프신 몸을 이끌고 들판과 산을 다니시며 나물을 채취하여 시장에 팔아 두 달 치 화실 수강료 만원을 손수건(보자기)에 싸 전해주시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정성 덕에 작업을 하는 내가 있게 되었기에 이 작품에 애정이 간다.

(200x120x90mm bronze, 2016)

<공사장에서1> (200x120x90mm bronze, 2016)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업을 병행하던 나는 늘 작업실을 갖고 종일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동경해왔다. 이후 2014년 명예퇴직을 하면서 현재 강화의 터에 작업실을 짓게 되었는데, 이곳은 젊은 시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여 마련해온 소중한 공간이다.

사회의 비정함과 냉혹함을 몰랐던 나에게 작업실을 짓는 과정은 일생일대의 큰 시련이었다. 그 시련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이 작품으로 표현함에는 부족하지만 작업의 고민과 그때 느꼈던 마음을 함께 담아 보고자 한 작품이기에 애정이 간다.

(420x290x190mm bronze +석재, 2023)

<인생>(420x290x190mm bronze +석재, 2023)

우연히 길을 걷다 옛날에 사용했던 댓돌이 눈에 들어왔고 이를 구입했다.
작업실 한 곁에 두었다가 위에 신발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신을 신던 사람이 떠나고 나면 빈 신발만 남을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인생은 결국 떠날 때 신발 한 짝도 가져갈 수 없고 신발이 남긴 무형의 자국만이 남겨짐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의미 있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제작해 보았다.

2.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1982년 결혼을 하고 작업과 교직을 병행하면서도 늘 작업만 하는 생활을 동경하던 차에 1900년대 초 인천직할시에서 상징조형물 공모가 있었다.

당시에는 새로운 기법인 와이어 커팅 기법을 이용해 응모를 하였다. 결과는 당선작 없는 1위를 하였다.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탓인지 실망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앞으로의 희망을 가지는데 만족해야 했고,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조형물 공모에는 여건이 되면 응모하였다.

그러던 차에 2019년 구월동 농산물 시장 건물을 도림동으로 신축이전을 하면서 그곳에 맞는 조형물 공모가 있었다. 당시 명예퇴직 후 작업에만 전념했던 나는 어느 때보다 고심을 해서 모든 농산물은 씨앗에서 시작됨을 강조하여 발아하는 모습에 착안하였다. 스스로 나름의 만족스러운 작품을 구상하고 제출하였으나 이 공모에서는 차점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이 작품의 발상을 이후 작업에 반영하게 되었고 모든 생물이나 무생물에서 살아나고 있음을 표현하는 콘셉트로 현재의 발아작품 시리즈를 제작하게 된다.

(300x300x350mm bronze+석재)

<대지로부터-23발아1> (300x300x350mm bronze+석재)

『 자연(自然)이 만들어낸 형상(形象)의 일부인 돌과 씨앗이 모체(母體)로부터 독립하여
돌에 터를 잡아 안착(安着)하여 싹을 틔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발아(發芽)의 모습.
成長하고 자라나는 많은 만물(萬物)들이 세상풍파(世上風波) 다 맞으면서 모진 세월(歲月)을 견뎌내고 있는 존재(存在)의 돌과 같이 흔들림이 없이 발아(發芽) 성장(成長)하길 바란다.
生命 – Life 밑줄: 정철수님의 싯구절

경이롭게도 힘을 느끼게 하는 낱말이 좋다.
생물(生物)은 물론 무생물(無生物)에도 존재(存在)로서의 살아있다는 생명(生命)이란 단어(單語)를 적용해 본다.
싹이 트다 – Germination 』 2023년 아시아아트쇼 이찬우 리플렛 글귀

3.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모든 이의 삶은 귀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사는 방식에 따라 그가 귀하게 살았는가 혹은 천하게 살았는가는 생을 마감한 후 다음 세대에서 판단을 받는다고 본다. 나는 내 작업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살았던 모든 자취에 예술성이 있던 사람이라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4.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입체를 하는 작가들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것 중 하나는 인체다. 인체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대상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델링을 키우는 소재로 탓할 것 없는 대상이기도 하여 인체를 주로 다뤄왔었다.

근대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권진규 작가를 통해 대학에서의 김수현, 김영원 선생님과 대학원의 전뢰진 선생님의 영향 아래 작업을 하다 보니 모델링에 충실하다는 장점을 지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교직과 작업을 병행하는 어려운 환경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새로운 방향이나 도전적인 시도에 인색하게 된 단점도 가지고 있어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늘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갈구하게 된 것은 2005년 3회 개인전에 선보인 풍경조각을 처음 제작하면서였고, 이후 동양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다.

앞으로 제작 방향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의 풍경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와 생물의 발아, 그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소멸하는 자연의 순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조형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5. 예술적 영감을 주는 인천의 장소 또는 공간은?

인천의 포구, 갯벌, 자연이 숨 쉬는 곳(강화)에서 식물과 생물의 성장이 가진 신비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자연이 이룬 조형적인 형태를 찾기 위해 여러 지역을 여행하고자 한다.

(220x160x110mm bronze)
(220x160x110mm bronze)

<출항22> (220x160x110mm bronze)

6. 앞으로의 활동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대학 시절을 포함, 조각 작업을 한 47년 동안 매년 쉼 없이 꾸준히 하였지만 생활을 위해 다른 여러 가지 일과 작업을 병행하느라 그 결과물의 양이 적었다. 앞으로 남은 생은 후세에 남길 만한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조각 작업에 몰두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