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우현 고유섭 선생을 아세요?

『고유섭 평전』 (한길사, 2023)

견수찬

햇살이 따갑던 지난 2023년 6월 24일 오후, 동인천역 앞 용동큰우물 곁에 인천의 문화계 인사 5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인천 출신의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1905~1944)의 79주기를 맞아 생전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의 뜻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다. 추모식이 이곳에서 거행된 것은 인접한 용동 117번지가 우현이 태어난 고택의 터이기 때문이었다. 고택은 오래전 멸실되고 지금은 새 건물 앞에 기념 표석만 남아있지만, 동인천역에서 답동사거리를 잇는 대로와 주변 소로에는 ‘우현로’와 ‘우현로 ○○번길’ 도로명 표지판이 빼곡하다. 우현이 태어나 성장하며 미술사학자의 꿈을 키워간 터전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한국미술사의 선구자이자 개척자

우현 고유섭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최초로 미학을 전공하고 한국미술사 연구의 길을 개척해 ‘한국미술사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의 ‘학문적 분투’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근대 한국미술사의 사조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미술사 연구의 여명기에 구축한 우현의 학문적 업적은 독보적이다. 아직 우리 학계에 미학에 대한 근대적 관념과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그는 일본을 통해 전해진 서구 미학이론을 흡수하고 규장각 등에 산재한 문헌자료를 섭렵하는 한편 현지답사와 실증적 고찰을 치열하게 병행해 한국미술사의 기초를 마련했다.

우현의 미술사 연구는 경성제국대 미학연구실 시절인 193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장 부임 이후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조선탑파의 연구’, ‘전별의 병’, ‘아포리스멘’ 등 오늘날도 수없이 인용되는 기념비적인 논저들이 속속 발표되었으며, 분주한 와중에도 만주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할 정도로 실증적 학문태도를 지켜나갔다. 어느새 우현은 한국미술사 연구의 구심점이 되어 있었고, 연구와 강의, 개성부립박물관 운영 과정을 통해 훗날 한국미술사 연구의 대들보가 될 애제자들을 길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유섭 평전』 (한길사, 2023)

『고유섭 평전』 (한길사, 2023)

우현학의 길잡이 『고유섭 평전』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우현이 생전에 이룩한 학문적 업적과 후대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우현은 불탑과 도자를 비롯한 수많은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체계적 이해의 틀을 마련하는 데 평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조선의 고미술을 관조(觀照)’하며 탐구를 거듭한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고찰의 석탑을 답사할 때나 박물관 전시실의 금동불을 감상할 때 시대와 양식을 어렵지 않게 구분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우현의 학문적 성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1990년대부터 『고유섭 전집』, 『우현 고유섭 전집』이 연이어 간행되면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우현의 생애와 학문을 함께 다룬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이원규 작가가 우현의 『약전』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그 생애 전반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자료가 마땅치 않아, 우현의 생애와 업적을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연말 『고유섭 평전』이 처음 출간된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저자인 이원규 작가의 충실한 정리와 쉬운 해설 덕분에 우리는 우현 고유섭의 생애와 학문적 업적에 대한 신뢰할 만한 ‘안내서’를 갖게 되었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고증해 그동안 잘못 알려진 사실관계를 바로잡는가 하면, 우현의 생각과 고민을 가상의 대화체 문장으로 생동감 있게 전해주기도 한다. 세세한 논저목록이 포함된 ‘연보’ 또한 일목요연하게 정리 수록했다. 고유섭의 삶을 이해하려는 이에게, 『평전』은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고 ‘백과사전’이 되어준다.

견수찬

견수찬(甄洙燦, Kyon, Soochan)

인천중구문화재단 영종역사관 관장.
한국사 전공. 인하대박물관, 인천중구청, 계양구청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박물관 건립과 운영, 지역 역사문화 연구를 담당해 왔다.
이메일 kyonsc@ijc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