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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도시를 딛고 존재를 탐색하다
유지수 청년기획자 인터뷰
홍봄
유지수 청년기획자
약력
2019 《개항장재구성》(옹노, 인천) 기획
2020 <만석동레시피> 프로젝트 기획
2021 인천시민의날 40주년 기념 사진전 《보더리스인천 : 경계를 넘어》 (인천시민愛집, 인천) 기획
2022 《강물이 무너지고 돌이 흘러갈 때까지》 (잇다스페이스, 인천) 기획
2023 《물결치는대로》 (우리미술관, 인천)
2023 《도깨비불》 (스페이스빔, 인천)
학력
2022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졸업
2023 인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재학중
도시는 커졌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들었고, 다시 쉴 자리를 찾아 주변을 떠돌았다. 움직이는 시간과 머무는 시간은 반비례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도시는 장소의 의미조차 옅어진 모습이다.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보다 더 큰 도시를 말한다. 큰 도시가 사람들을 윤택하게 하리라는 청사진. 우리가 사는 도시는 더 크지 못해 덜 윤택한 걸까.
‘효율성’과 ‘경쟁력’을 앞세운 메가시티 논쟁이 한창인 연말. 도시를 둘러싼 여러 단상 속에 도시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이를 만났다. ‘내가 사는 곳과 발을 디딘 땅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무슨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유지수 청년기획자다. 인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재학 중인 그는 개항장, 만석동을 비롯한 인천의 원도심, 그리고 도시재생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해 왔다.
유지수 기획자 ©유지수
다음은 유 기획자와의 문답.
Q. 그동안 했던 기획들을 소개해 달라.
A. 첫 기획은 2019년 <개항장 재구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항장을 관광지로만 생각하는데,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전시를 구성하고, 소장품을 함께 전시했다. 다음 해에 진행한 <만석동레시피>는 지금은 사라진 만석동의 굴막을 브랜딩하고 기록하기 위한 아카이브에 주목했다. 2021년은 인천시민의날 40주년 기념 사진전 <보더리스인천 : 경계를 넘어>에 참여했고, 지난해는 <강물이 무너지고 돌이 흘러갈 때까지>를 기획했다. 최근 기획한 전시로는 우리미술관에서 열린 <물결치는대로>가 있다.
Q. 인천의 원도심과 도시재생을 주제로 한 기획이 많은데. 지역, 그것도 원도심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
A. 인천에 살더라도 원도심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 곳에 청년들이 가서 무언가를 발견해 내는 과정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원래 레트로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기도 해서 원도심에서 하는 기획들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이런 작업들은 단순히 지역을 탐구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사람과 사람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그곳에 내가 존재한다’라고 외치는 일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물결치는대로> 전시 전경 ©유지수
Q. 최근 기획한 <물결치는대로> 역시 청년들이 원도심을 탐구한 결과로 보이는데.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A. 동구 만석동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스펙타클의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떠올렸다. 스펙타클의 사회는 프랑스 학자 기 드보르가 말한 이론으로, 원본보다 복사본이, 현실보다 환상이나 가상이, 본질보다 외양이 더 선호되는, 그런 스펙타클한 이미지를 소비하느라 인간들이 소외된다는 이야기다. 만석동은 부두를 중심으로 수산업이 발달한 곳인데,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만석동의 사람들이 외부로 유출되고, 남은 사람들은 어쩌면 소외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내가 봤던 만석동은 공장이 여전히 증기를 내며 돌아가고, 노동자들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고, 그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의 직원들도 바삐 움직인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놀이터와 공부방을 이리저리 쏘다니는 곳이다. 화려한 스펙타클은 없어도 묵직한 내러티브는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Q. 기획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철없는 모험처럼 보일까 봐’ 걱정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뜻이었나. 작업을 진행하며 해소가 됐는지.
A. 작가들이 만석동을 표류하는 과정이 있는데, 어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타자화 시킨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표류’라는 것은 단순히 방법론뿐만 아니라 요즘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표류가 도시를 탐구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청년 스스로가 표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조금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더 확장해서 연결했다. 공간을 탐구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거기서 찾아내는 자신이 있다는 것. 그렇기에 이 과정은 공간을 탐색하는 일에서 나아가 나를 탐색하는 일이라는 식으로 결론을 냈다.
<물결치는대로> 전시 전경 ©유지수
Q. 도시의 공간을 직접 다니며 탐구하고, 주관적으로 그 결과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전시와 별개로 이런 작업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
A. 요즘은 이동이 쉬워져서 어디든 쉽게 갈 수 있고, 인터넷으로도 어디든 간다. 뭔가 정주한다는 느낌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곳이 있고, 내가 집으로 두고 생각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그 주변의 것들을 조금 더 파악하고 알아봐야 조금 더 자기를 아는 거 아닐까. 사실 예술을 하시는 분들이 항상 자기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나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도 좀 더 내가 살고 있는 주변 공간과 지역을 알아보는 게 어떨까.
Q. 원도심이나 청년문제 등 전시를 기획할 때 염두하는 생각들이 사회현상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사회현상 쪽으로 접근하는 까닭은.
A. 전시도 그렇고 또 다른 공연이나 콘텐츠를 볼 때도 만든 사람이 개인적인 이야기만 풀어서는 ‘일기장을 보여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공감이 얼마나 될까?’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사람들이 같이 생각해 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풀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런 방식으로 기획하게 됐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나의 시점에서 보면서 계속 생각을 이어가다가 풀어가는 방식이 떠오르면 기록해 두고 기획하는 편이다.
<물결치는대로> 전시 전경 ©유지수
Q. 다음 기획으로 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A. 최근 ‘사람 간의 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너무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상처받을 때도 있고, 아예 모르는 사람한테도 위로받을 때도 있고. 그런 거리감이 뭔가 낯설게 느껴진다고 해야 될까. 다시 좀 생각해 보게 되면서 그런 내용을 풀어나가는 전시를 하고 싶다.
12월 전시도 있다. 스페이스빔에서 ‘도깨비불’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한다. 지난해 SPC 노동자 사망 사고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지역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과거 인천의 노동현장과 연결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결과로 동료 작가들과 노동의 가치가 외면받는 무관심하고 무기력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탐색하고, 조선인촌주식회사의 여성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벌였던 과거와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그 흔적들을 추적해나가던 과정을 전시에 담아냈다.
Q. 내년 논문이 끝나면 대학원 졸업을 하게 되는데. 활동 계획은.
A.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인천에서 계속 작업을 해왔기에 졸업을 하더라도 인천에 기반을 두고 활동할 것 같다. 일부러 서울에 작업실을 구해서 다시 기반을 다져 보려는 작가들도 많지만, 꼭 서울로 가지 않아도 사는 곳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서울에서도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미래에는 시립미술관에서 기획을 하며 일하고 싶다. 아무래도 시립미술관은 지역탐색을 많이 하니까 관심을 둔 지점과도 잘 맞을 것 같다.
인터뷰 진행/글 홍봄 (Hong Bom)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하다’ 기자. 인천경기탐사저널리즘센터 공동대표.